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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짠 하얀 옷 1 : 디아스포라(Dictee-Theresa Hak Kyung Cha, 1982)영미문학/영미소설 2023. 3. 6. 23:40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다뤄보기로 한 작품은 Theresa Hak Kyung Cha(차학경)의 Dictee(딕테:받아쓰기)입니다. 고국을 떠나야했던, 제 3자로서 흔들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이념에 대항했던, 차학경의 작품을 따라가보며, 저마다의 무언가를 다시 기억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Diaspora - 특정 민족이 원래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 또는 그러한 집단'
From A Far
멀리서 온
What nationaIity어떤 국적
or what kindred and reIation혹은 어떤 인척과 친족관계
what blood relation어떤 혈연
what blood ties of blood어떤 피와 피의 연결
what ancestry어떤 조상
what race generation어떤 인종 세대
what house clan tribe stock strain어떤 가문 종친 부족 가계 부류
what lineage extraction어떤 혈통 계통
what breed sect gender denomination caste어떤 종(種) 분파 성별 종파 카스트
what stray ejection misplaced어떤 길잃은 방출 잘못놓인
Tertium Quid neither one thing nor the other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의 부류
Tombe des nues de naturaIized하늘에서 떨어지다 국적이 박탈 된
what transplant to dispel upon어떤 쫓아내야 할 이주(移住)
P. 20.
첫 문단은 책의 P. 20을 가져온 것으로, 이민서류의 인적사항 항목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당신은 어떠한 이유로 조국을 떠나야했습니다. 새로운 문화권에 발을 들이는 일은 인터뷰 혹은 서류를 작성하며 시작됩니다. 이민관은 준비된 항목에 따라 조목조목 당신에 대해 묻습니다. 국적과 종교, 혈통 혹은 신분, 자기 나라로 온 이유까지 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로 우리 자신을 완전히 규정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들의 생각으로 우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또한 가능한 것일까요? 그럼에도, 당신은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언어로 자신을 규정해야 그들의 사회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Aller à la ligne C'était le premier jour point
문단 열고 그날은 첫날이었다 마침표
Elle venait de loin point ce soir au diner virgule그녀는 먼 곳으로부터 왔다 마침표 오늘밤 저녁식사 때 쉼표
les familles demanderaient virgule ouvre les guil-lemets가족들은 물을 것이다 쉼표 따옴표 열고
ça c'est bien passé le premier jour point d'interrogation첫날을 잘 보냈지 물음표
ferme les guillemets au moins따옴표 닫고 적어도
virgule dire le moins possible virgule la réponse serait virgule쉼표 가능한 한 최소의 말을 하기 위해 쉼표 대답은 이럴 것이다 쉼표
ouvre les guillemets Il n'y a q'une chose point ferme les guillemets ouvre les guille-mets따옴표 열고 단 한 가지 일밖에 없어요 마침표 따옴표 닫고 따옴표 열고
Il y a quelqu'une point loin point ferme les guillemets어떤 여자가 있어요 마침표 먼 곳에서 온 마침표 따옴표 닫고
Open paragraph It was the first day period문단 열고 그날은 첫날이었다 마침표
She had come from a far period tonight at dinner comma그녀는 먼 곳으로부터 왔다 마침표 오늘밤 저녁식사 때 쉼표
the families would ask comma open quotation marks가족들은 물을 것이다 쉼표 따옴표 열고
How was the first day interrogation mark첫날이 어땠지 물음표
dose quotation marks at least
따옴표 닫을 것 적어도
to say the least of it possible comma the answer would be가능한 최소의 말을 하기 위해서 쉼표 대답은 이럴 것이다
open quotation marks there is but one thing period따옴표 열고 한 가지밖에 없어요 마침표
There is someone period From a far period dose quotation marks어떤 사람이 있어요 마침표 멀리서 온 마침표 따옴표 닫고
P. 1.
불어로 적힌 첫 문단과 그것을 영어로 받아쓰기한 다음 문단은 타국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어렸을 때로 돌아가봅시다. 읽고 쓰기 위해 받아쓰기를 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불러준 대로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갑니다. 그 말이 어떤 뜻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선생님이 불러준 말을 정확히 받아적는 것.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도 이와 같습니다. 오직 불러준 대로 적습니다. 남의 말을 정확히 그대로 받아적는 것만이 중요한 일이고, 그렇게 서서히 당신은 새로운 말을 배우고, 새로운 문화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번역을 보면 두 문단에서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는데, 불어로 '단 한 가지 일밖에 없어요'라고 쓰인 부분이 영어로는 '한 가지밖에 없어요'라고 달라지거나 '어떤 여자가 있어요 먼 곳에서 온'이 '어떤 사람이 있어요 멀리서 온'라고 달라지며, 마침표와 따옴표같은 문장부호의 위치가 다른 곳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완전하게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곧 그름이 아닌 다름의 논리로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권력관계를 비틀 수 있다는 호미바바의 이론과 연결지을 수 있습니다. 또한, comma(,)나 period(.)등의 문장부호를 소리 그대로 수동적으로 받아적는 모습에서, 새로운 언어의 의미가 수용자에게 충분히 체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체계를 학습한다면, 수용자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DISEUSE
(여자) 화술가
She mimicks the speaking. That might resemble speech. (Anything at all.)그녀는 말하는 시늉을 한다. 말과 비슷한 것을. (무엇과 비슷하다면.)
Bared noise, groan, bits torn from words.드러난 소음, 신음, 낱말들에서 뜯겨 나온 조각들.
Since she hesitates to measure the accuracy, she resorts to mimicking gestures with the mouth.그녀는 정확도를 측정하기 위해 주저하기 때문에, 입으로 흉내내는 짓을 할 수밖에 없다.
The entire lower lip wouId lift upwards then sink back to its originaI place.
아랫입술 전체가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내려앉는다.
She would then gather both lips and protrude them in a pout taking in the breath that might utter some thing. (One thing. Just one.)그리고 그녀는 두 입술을 모아 뾰죽이 내밀고 일부의 어떤 것을 말할 듯이 (한 마디. 단 한마디.) 숨을 들이쉰다.
But the breath falls away.그러나 숨이 떨어진다.
With a slight tilting of her head backwards,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고,
she would gather the strength in her shoulders and remain in this position.
어깨에 힘을 모아 이 자세로 남아있는다.
It murmurs inside. It murmurs. Inside is the pain of speech the pain to say.
속에서 웅얼거린다. 웅얼웅얼한다. 속에는 말의 고통 말하려는 고통이 있다.
Larger still. Greater than is the pain not to say.그보다 큰 것이 있다. 더 거대한 것은 말하지 않으려는 고통이다.
To not say. Says nothing against the pain to speak.말하지 않는다는 것. 말하려는 고통에 대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It festers in-side. The wound, liquid, dust. Must break. Must void.
안-쪽에서 들끓는다. 상처, 액체, 먼지, 터뜨려야 한다. 배설해야 한다.
She allows others. In place of her. Admits others to make full.
그녀는 타인들을 허용한다. 그녀를 대신하여. 타인들이 가득찰 수 있도록 용납한다.
Make swarm. All barren cavities to make swollen.한 떼가 되어 들끓도록. 모든 불모(不毛)의 공동(空洞)이 부어오르도록.
The others each occupying her. Tumorous layers,타인들은 각기 그녀를 점령한다. 종양의 층층,
expel all excesses until in all cavities she is flesh.
모든 공동이 새 살이 될때까지, 모든 잉여물을 축출한다.
Inside her voids. It does not contain further.
그녀의 속이 비워진다. 더 이상 들어 있지 않다.
Ris-ing from the empty below, pebble lumps of gas.아래의 빈 곳으로부터 떠오르-는 것은, 가스의 조약돌 덩어리들.
Moisture. Begin to flood her. Dissolving her.
습기. 그녀를 침수시키기 시작한다. 그녀를 용해시키며.
Slow, slowed to deliberation. Slow and thick.천천히, 완만함으로 늦추어졌다. 천천히 그리고 두껍게.
P. 3-5. 부분 발췌.
그렇게 남의 말을 받아쓰던 중,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지만 말하는 일은 곧 고통과도 같습니다. 그녀는 모국어를 잃었고, 남의 말만을 받아쓰며 이제 그녀의 말은 말하는 '흉내'에 불과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하려는 고통'보다 '말하지 않으려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에,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기위한 첫 시도를 하게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박탈당했고, 그 내면은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 차있는 상태입니다. 이에 그녀는 Diseuse(운명을 말하는 사람)가 되어, 말할 수 없는 자기 대신, 타인들을 하용하고 타인들의 말을 전달하기를 선택합니다. 그녀의 속으로 타인들이 들어와 그녀를 완전히 대체하고, 모든 빈구석에는 새 살이 돋아나게 됩니다. 그녀의 속이 완전히 비워졌을 때, 그녀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박혀있던 돌들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타인들을 허용하였고, 아주 천천히, 힘겹게 첫마디를 시작합니다.
Notes:
- 원서는 《Dictee. Theresa Hak Kyung Ch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1.》, 김경년 역본을 참고하였다.
- DISEUSE는 모국어를 잃고 수동적으로 말을 받아쓰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된 주체가 대항하는 수단으로 타인들의 말을 전달하게 되며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 탈식민주의 이론가 호미바바(Homi K.Bhabha)는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는 (incommensurable) 위치에 놓이는 것을 통해 권력관계 전복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앞서 다뤘던 이민서류에서 타국의 언어와 분류체계로는 자신을 완전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점, 불어를 영어로 바꿔쓸 때 원래 의미와 문장부호의 사용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점 등을 그러한 예시로 볼 수 있다.
- Theresa Hak Kyung Cha(차학경, 1951-1982) : 1951년 부산에서 5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 1963년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일본의 강압통치를 피해 만주에 머물렀고, 제 2차 세계대전 중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차학경의 오빠가 사망하고,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게 된다. 차학경은 미국에서 미술가이자 작가로 성장하며, 프랑스 유학을 통해 영화이론에 대한 큰 영감을 얻기도 했다. 차학경은 딕테를 출판한 1982년 11월, 뉴욕시에서 비극적으로 살해되어 삶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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